마을 어귀의 당산나무, 장승의 전설

길목에 서 있는 나무 하나, 장승 하나
시골 마을 어귀를 지나다 보면 종종 커다란 나무와 나무토막 혹은 돌로 만든 조형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당산나무와 장승입니다. 과거에는 어느 마을을 가든 이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전통 마을의 수호신으로서의 당산나무와 장승에 대해 알아보고, 그에 얽힌 민속 신앙과 전설, 그리고 현재의 보존 상황을 소개합니다.
1. 당산나무란 무엇인가?
당산나무는 마을 입구나 중심에 서 있는 느티나무, 팽나무, 회화나무, 은행나무 등 오래된 나무를 말합니다. 이 나무는 단순한 경관용이 아니라, 마을을 지켜주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주민들은 당산나무 아래에서 정월 대보름이나 음력 10월에 제사를 지내고, 마을의 안녕, 풍년, 재앙 방지를 기원했습니다. 나무에 붉은 천이나 금줄을 두르는 것도 금기의 표현이었습니다.
2. 장승 – 마을을 지키는 나무 사람
장승은 나무나 돌로 만든 마을 수호신입니다. 얼굴이 새겨져 있으며,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것이 일반적입니다.
장승은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잡귀, 재앙, 전염병, 외부 침입을 막는 수호물이었습니다. 또한 행정 경계, 마을 입구 표지의 역할도 했습니다.
특히 경북 영양, 전북 고창, 경남 하동 등지에서는 장승제와 장승맞이 축제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3. 당산과 장승에 얽힌 전설
- 충남 논산의 한 마을에는 당산나무에 벼락이 친 후 마을에 전염병이 퍼졌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이후 매년 당산제를 정성껏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 경기도 양평의 한 장승은 민심이 흉흉할 때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이 있고, 이 장승을 돌로 두드리면 마을에 비가 내린다는 믿음도 전해집니다.
- 전북 고창의 장승마을에는 수십 개의 장승이 숲처럼 모여 있는 장승공원이 조성돼 있으며, 이곳은 장승문화의 전통을 관광과 연결한 사례입니다.
4. 당산과 장승의 민속적 상징
- 풍요의 상징: 당산나무의 풍성한 가지는 풍년, 다산을 의미
- 경계의 상징: 마을 바깥과 안을 구분하는 경계표시
- 금기의 상징: 금줄, 붉은 천을 두름으로써 함부로 접근 금지 의미
- 공동체의 중심: 제사를 통해 마을 단결과 유대 강화
현대의 도시에는 보기 힘들지만, 당산과 장승은 공동체의 정신적 지주이자 무형의 문화유산으로 존재해왔습니다.
5. 당산제와 장승제
정월대보름 즈음에는 각 마을에서 당산제나 장승제가 열립니다. 이는 단순한 민속 행사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 마을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체 정신을 다지고
-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의례적 기능
- 세대 간 전통 계승과 교육의 장으로 활용
현재는 일부 지자체에서 문화재 보호 및 지역축제로 계승하고 있으며, 관광 자원화와 교육 콘텐츠로 재해석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6. 현대에서의 보존과 재해석
산업화와 도시화로 많은 당산나무와 장승이 사라졌지만, 최근에는 지역문화재 지정, 마을관광 자원화 등의 방식으로 그 가치를 되살리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고창 장승마을: 장승박물관 + 체험 프로그램 운영
- 양평 두물머리: 현대식 장승 조형물을 문화 콘텐츠로 확장
- 함안 무진장터: 장승을 활용한 골목 디자인 조성
이런 움직임은 단순한 전통 보존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문화적 재생의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답사 시 유의사항
- 실제 당산나무는 신성시되는 문화재일 수 있으므로 함부로 만지지 말 것
- 장승은 복원 작품인지 실제 유물인지 안내판 확인
- 당산제 기간에는 행사 참여 전 사전 문의 필수
- 사진 촬영은 가능하나, 플래시 및 드론 사용 금지 구역 확인
마무리하며
당산나무와 장승은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을 지켜온 무언의 수호자였습니다. 그들은 말을 하지 않지만, 풍경이 되고 신앙이 되었고, 마을 사람들의 믿음과 바람을 품고 서 있는 존재였습니다.
다음에 시골 마을 어귀에서 장승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표정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상상해 보세요. 우리는 전통 속 시간의 정령과 눈을 맞추고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