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기억을 간직한 간판들
빠르게 바뀌는 도시 풍경 속에서 전통시장의 간판은 과거의 시간을 붙잡고 있는 몇 안 되는 존재입니다. 붓글씨로 쓴 상호, 손으로 그린 물고기 그림, 해묵은 철제 글자판은 그 자체로 거리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전국의 전통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오래된 간판과 상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도시의 얼굴을 재조명해봅니다.
1. 서울 통인시장 – 붓글씨 간판의 멋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통인시장은 도시형 시장으로 유명하지만,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전통 붓글씨 간판이 여럿 남아 있습니다. ‘○○당 한약방’, ‘삼○○제과점’ 등 1970~80년대 서예체 간판은 지금의 디지털 간판과 전혀 다른 온기를 느끼게 합니다.
특히 목판 간판은 비바람을 맞고도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간판 자체가 시장의 역사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2. 대구 서문시장 – 수공예 간판의 흔적
대구 서문시장은 우리나라 3대 시장 중 하나로, 일부 구역에는 옛 상점 이름과 업종이 그대로 보존된 간판들이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방직사’ 같은 제직 관련 상점들은 실제 영업은 종료됐지만 간판만은 보존되고 있어, 직물의 도시 대구의 과거 산업사를 보여주는 사료로 평가됩니다.
3. 전주 남부시장 – 그림 간판의 정취
전주 남부시장에는 그림 간판이라 불리는 손그림 형태의 간판이 아직도 일부 남아 있습니다. 주로 생선가게나 두부집 등에서 물고기, 솥, 콩 등 제품을 직접 그려넣은 간판들이며, 글보다 그림이 강조된 방식이 독특합니다.
이러한 간판은 문맹률이 높던 시절 고객을 위한 실용적 목적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4. 강릉 중앙시장 – 간판 없는 상점도 문화다
강릉 중앙시장 골목에는 간판이 거의 없는 상점도 존재합니다. 이들은 세대를 이어온 가게들로, 이미 지역 주민 사이에서는 입소문과 위치만으로도 충분한 인식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런 무간판 상점들은 도시문화 속 ‘말 없는 간판’으로 기능하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상호 기억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보여줍니다.
5. 부산 국제시장 – 시대별 간판의 공존
국제시장 골목은 특이하게도 네온 간판, 금속 간판, 플라스틱 간판이 공존하고 있는 곳입니다. 각 간판마다 1970년대, 80년대, 2000년대의 시대 감성이 담겨 있으며, 하나의 골목에서 간판의 변천사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입니다.
오래된 간판이 중요한 이유
- 지역 상권과 시대를 반영한 도시문화 기록물
- 디자인 사료로서의 가치 – 서체, 재질, 구도 등
- 생활사 콘텐츠로의 확장성 – 다큐, 전시 가능
- 관광 콘텐츠와 결합 시 시장 브랜드화 가능
탐방 팁 및 주의사항
- 간판 촬영 시 상인에게 촬영 허락 필수
- 폐점 간판은 문화재로 보존되는 경우가 있어 무단 접촉 금지
- 시장 방문은 오전 10시~오후 3시 사이가 적당
- 간판 해설 투어가 운영되는 지역도 있음 (서울, 대구 등)
마무리하며
간판은 단순한 상호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도시의 정체성과 기억,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드러내는 상징입니다. 오늘, 전통시장의 오래된 간판을 천천히 둘러보며 시간을 간직한 거리의 언어를 읽어보세요. 분명 그곳엔 잊혀진 이야기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